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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박9일 2020.8.5~13] "같이 가자!"

2020-08-25

작년 1학기 말, 장애아 학부모로부터 다석 군데 고발을 당해서 2학기에는 휴직을 했습니다. 그 고발 사건은 제 신앙 여정의 가장 큰 '십자가 사건'이었고, 휴직 기간에 떠돌이 피정을 다니며 제가 가장 이해할 수 없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는 체험도 했습니다.


그런데 올 해 학교에 다시 복직하면서 저는 깊은 영적 실망 상태에 빠졌습니다. 

30년 교직 생활에 대한 회의와 20여년 신앙 생활에 대한 회의가 동시에 몰려왔습니다.

영적 실망은 저의 생각과 육체에 구체적으로 드러났는데.  먼저 '교직을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혔습니다. 

​'승진하지 않고 평교사로 나이먹은 교사는 관리자와 동료 교사, 학부모 그리고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퇴직해도 경제적으로 별 손해가

아니다. 더 거룩한 일을 해라.' 는 등의 생각이 제 마음을 부추겼습니다. 

또 올해 들어 아무 이유없이 불쑥불쑥 화가 올라와서 양방과 한방으로 치료를 받았으나 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피정에 들어와서 기도를 하면서 이러한 저의 영적 실망 상태를 명확히 보게 되었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과의 화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퇴직을 하고자 하는 생각은 더 거룩한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러 자존심이 상해서라는 것을,

화가 나는 것은 내 몸이 하는 십자가에 대한 거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삶의 여정'기도 시간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성화를 바라보며 중년기를 돌아보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에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같이 가자 !"

​저는 "뭐래? 저 몰골로 나타나서 ..."라고 투덜거리다가 갑자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습니다.

십자가 상의 예수님의 "같이 가자."는 초대에

 "예"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십자가의 고통이 무엇인지 이제는 조금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

"아니요"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십자가 안의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윤 소화데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