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사순 시기의 기도 1 (신소희 수녀)

2021-02-18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요엘 2,12-13)

 

2021년 재의 수요일 제1독서의 이 말씀은, 제멋대로인 작은아들이 돌아오는 행색을 멀리서 알아보고 가엾어 한 아버지(루가 15, 16-20)의 심정을 연상시키며 사순 시기의 초대로 다가옵니다. 이 비유에서 작은아들은 소유를 다 잃고 돼지들이 먹는 음식조차 주는 이 없는 비참한 처지에 이르러 비로소 제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정신이 든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루가 15,16-20) 그렇습니다. 제정신이 들어야 멈춥니다.

 

1. 멈추다 -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요엘 2,12)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합니다. 2020년 초부터 우리 생활양식과 존재방식을 뒤흔들어 놓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은 강제적으로 우리를 멈추게 하였습니다. 감염병의 위협은 인류 공동체가 제정신이 들도록 강력하였습니다. ‘!, !, !’의 발전과 성취를 향해 질주하고 소유와 쾌락을 탐닉하는 삶의 양식의 멈춤을 요구받으며, 사회적으로 작은아들처럼 제정신이 들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멈춤의 환경에서 많은 사람들이 ?” 무엇이?”, “어쩌다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시작하였고, ‘사회적 명상이란 표현도 종종 언급되었습니다. 

 

2. 일어나 나와라 - “신랑은 신방에서 나오고, 신부도 그 방에서 나오게 하여라.” (요엘 2,16)

제정신이 들면, 그간 살아온 방식으로부터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돌아갑니다. 애타게 기다리시는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길은 각자가 뭉개고 들어앉아 지내곤 하는 오래된 나의 옛집오래되어 친숙하기까지 한 고통, 무력감, 의심, 자기비하, 감각적인 충동을 좇는 경향에서 일어나나옴이 필요하지요!

일어나돌아가는 여정에서는 궤도에서 다시 벗어나지 않도록 시선을 하느님께 맞추고 걸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시각은 오감 중 가장 우선적으로 작용하는 감각입니다. 우리 말에 보고 배운다는 표현이 있는데,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 구성원들의 영향보다 sns보며각종 매체에서 제공하는 정보와 지식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더 강력한 듯합니다. sns는 소통과 연대를 돕는 유익한 수단이지만, 그것의 사용에 천착하는 지경에 처하면 나는 목적보다 수단에게 지배를 받고 종속된 존재로 전락됩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분명합니다.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요엘 2,12-13)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요엘 2,13) 하느님은 나에게 돌아와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십니다.

 

3. 하느님께 시선 두기

지난해 연말에 갑자기 오른팔이 아파지면서 제 일상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발열과 통증을 견디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 고통의 의미에 대해 의문이 들 때에는 참 힘들었습니다. “교회 내 신비가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육신의 고통을 원했지만, 나는 예수님을 닮고자 원했던 것이 아니라 나의 관리 소홀로 병이 난 것이니 신앙의 차원에서 의미 없는 일이다."는 생각이 유혹처럼 밀려와 괴로웠는데, 그것은 장차 오른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깊은 불안과는 비교되지 않는 괴로움이었습니다. 그 때에 제가 했던 유일한 일은 내면의 소리들이 요동칠 때마다 그 움직임들을 감지한 후 보내고, 나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멘토(mentor)로 삼고 지내는 여성 신비가 안트베르펜의 하데위히(Hadewijch von Antwerpen)그분을 단순하게 응시하기”(환시2)를 즐겨하는 중에 하느님의 불타는 사랑을 맛보며 예수님의 지상 상애를 닮고자 헌신적으로 살았습니다. 아시시의 글라라 성녀(St. Clare of Assisi) 또한 그리스도를 티 없는 거울에 비유하며 영적수련으로서 나의 사랑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열망으로 거울을 바라보라.”라고 조언하며 응시하기”를 매우 강조하였습니다. (성녀 아시시의 글라라(Clare of Assisi)가 프라하의 복녀 아녜스에게 보낸 편지 2;4)  이 신비가들의 경험은 제가 가야할 길을 가리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연피정을 주신 분의 안내를 따라 기도하던 중에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콜로새 1,24)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며, 그것이 나의 현재 사도직이라는 이해가 열렸습니다.

 

시선을 끊임없이 하느님께 두고 돌아가는 길에서 우리의 신앙의 눈이 뜨이면 육안을 초월한 또 다른 차원에서 모든 것을 보게 됩니다영원하신 하느님 사랑의 신비 차원에서 육화하신 하느님의 수난과 죽음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예수님의 수난을 사랑으로 뒤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4. 제안

올 사순시기에 동안 십자가 상의 예수님단순하게 응시하는 시간을 꾸준히 마련하고, TV, 유투브 , 페이스북 , 카톡, sns와 보내는 시간, 혹은 공상하는 시간을 줄이는 수련을 하시도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단식은 눈의 극기가 가장 필요하다” (아메데오 첸치니)